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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4.19의 해석 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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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파내에서 여전히 이승만이 3.15부정선거의 주역이고 사사오입개헌의 독재자며, 그래서 4.19를 맞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역사투쟁에서 좌파의 헤게모니에 눌려 컴플렉스를 가진 것이다.
그러니 홍준표의 이승만 개헌 독재론에 저항없이 끌려 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4.19는 독재에 항거한 민주투쟁이 아니었다.
당시 민중들은 부정선거든, 사사오입 개헌이든 관심이 없었다. 먹고 살기에 바빴다.

아니라면 왜 국민들은 바로 이어서 일어난 5.16에 환영했나?
왜 박정희는 자신의 5.16이 4.19에 뿌리를 두었다고 했나.

왜 3.15 부정선거와 사사오입 개헌을 비판했던 국민들이 박정희의 쿠테타와 유신개헌에는 찬성했나.

4.19의 성격은 재 발견되고 재 정의되어야 한다.
도대체 그 시기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대해 각성했다고 민주와 자유를 내세워 민중운동을 했단 말인가.

4.19의 근본동력은 전후복구상태에서 원조경제의 분배가 빚은 경제적 불만이었다. 뭔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내 입에는 안들어 오는 것이다. 당연히 원조 물자들은 기업들에게 먼저 돌아갔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서다.

뭔가 희망들은 있는데 불만들이 누적되었다. 여기에 이승만 정권이 원조물자를 빼돌린다는 소문이 일었고, 실제로 군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혁명은 희망과 불만이 공존해야 일어난다.
이러한 동요 4.19를 지식인들이 민주와 자유로 포장했을 뿐이다.

이후 박정희의 권위주의 통치에도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고 따랐던 것은 경제적 삶이 이전 보다 계속 나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4.19는 사실, 빵을 달라는 것이었지, 정의와 자유와 민주를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인들의 포장이 민중들의 요구 그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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